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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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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엘리자베스 키스는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20세기 초 아시아를 여행하며 동양의 삶과 문화를 그린 판화가이다. 1915년 일본을 방문하여 홋카이도 등지에서 그림을 그렸고, 1919년 한국을 방문하여 3·1 운동 시기 한국의 풍경과 사람들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는 일본의 신판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목판화 제작을 시작했으며, 한국,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수집한 소재로 120여 점의 목판화 또는 동판화 작품을 제작했다. 키스는 한국 관련 작품을 80여 점 남겼으며, 1946년에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내용의 책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은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6년 한국에서 단독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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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엘리자베스 키스(왼쪽)와 자매
엘리자베스 키스(왼쪽)와 자매
원어 이름Elizabeth Keith
직업화가
출생일1887년 4월 30일
출생지애버딘셔, 스코틀랜드
사망일1956년 4월 (68세)
사망지런던, 영국

2. 생애

엘리자베스 키스는 1887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나 1898년 런던으로 이사했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으며,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1915년 언니 엘스펫과 형부 죤 로버트슨 스콧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무기한 체류하며 홋카이도 등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다. 1919년 3월 28일, 3·1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언니 내외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에 머무르면서 그림을 그렸다.

1919년 가을 도쿄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고, 와타나베 쇼자부로의 권고로 '달빛 아래의 동대문'을 목판화로 제작했다.[21][22] 이후 평생 약 120여 점의 목판화 또는 동판화 작품을 제작했다. 한국, 중국, 동남아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고, 특히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1921년1934년에 한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한국인과 한국 풍경을 그린 작품을 80여 점 남겼으며, 그 중 약 30점을 판화로 만들었다.

1917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적십자사 주최 자선 행사로 풍자화집을 간행하여 배포회를 열기도 했다. 1921년1934년에는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귀국길에 미국에서 순회전을 열었으며, 1924년에는 영국 왕립 예술원, 1926년에는 파리, 1928년에는 미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46년 출판된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은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과 함께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23] 1928년에 출판된 《Eastern Windows》는 여행 중 언니에게 쓴 편지를 편집하고 12점의 그림을 소개했다.[24] 두 책 모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1956년 4월 런던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26][27] 그녀의 작품은 세계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세기 초 동양을 찾아와 여러 판화를 남긴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6년에는 한국에서도 단독 전시회가 열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 1. 초기 생애

1887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나[19][20] 1898년 런던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세관장을 지냈으며, 엘리자베스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다.[1] 아서 키스 경의 사촌이다.[2] 엘리자베스 키스가 1887년에 태어났는지 1888년에 태어났는지는 불확실하다.[3] 독학으로 수채화를 그렸다.

2. 2. 일본과의 인연, 그리고 조선

1915년 일본에 도착한 키스는, 홋카이도를 포함한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다. 1919년 3월 28일, 언니 내외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3·1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19][20] 한국에서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모델을 구하고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언니가 일본을 경유하여 영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

1919년 가을 도쿄에서 수채화 전시를 열었고, 신판화 운동에 앞장섰던 와타나베 쇼자부로의 권고로 '달빛 아래의 동대문'을 목판화로 만들었다.[21][22] 이 그림의 성공 이후로 엘리자베스 키스는 평생에 약 120여 점의 목판화 또는 동판화 작품을 제작한다. 엘리자베스는 한국, 중국, 동남아의 필리핀 군도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며 그림을 그리고 목판화로 만들었다. 특히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어 1921년1934년에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한국인과 한국 풍경을 그린 작품을 80여 점 남겼으며, 그중 약 30점을 판화로 만들었다.

1946년 출판된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은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규탄하고 한국 사람들의 고통을 동정하는 글을 담고 있다.[23]

위 그림은 한국의 신부를 그린 것으로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참관한 전시회에서도 전시되었으며, 목판화로도 제작되었다.[28][29][30]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결혼식 날 신부가 얼굴에 백색 분을 바르고, 눈을 감듯이 내려뜨고, 온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꼼짝 못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차라리 슬퍼 보였다고 소감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세 차례 디자인했는데, 크리스마스 씰의 창시자인 셔우드 홀 박사가 이 그림의 모델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1919년 미쓰코시에서 조선반도를 그린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을 때, 와타나베 쇼자부로를 만나 목판화 제작을 권유받았다. 같은 해 3·1 운동 직후 언니와 함께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하여 3개월간 체류하며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조선에 체류하는 동안, 조선인의 생활상에 깊은 흥미를 느껴 서울, 원산, 함흥, 평양, 금강산 등을 여행하면서, 각지의 풍경과 풍속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1921년 9월 20일과 22일 양일간, 서울 장곡천정(현 소공동)의 은행 집회소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1934년 2월경에는 미쓰코시(현 신세계) 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도쿄에서도 조선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키스의 작품은 뛰어난 묘사력과 원색에 의한 신선하고 장식적인 색채, 안정된 구도 등 선명한 현장감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우키요에를 배웠지만, 조선의 풍속을 그린 작품에서는 그 영향을 전혀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조선적인 선묘가 나타난다.

2. 3. 작품 활동과 전시회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5년 일본에 도착하여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그림을 그렸고, 1919년 가을 도쿄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다.[21][22] 이때 신판화 운동을 주도하던 와타나베 쇼자부로의 권유로 '달빛 아래의 동대문'을 목판화로 만들었다.[21][22] 이 작품의 성공 이후 엘리자베스 키스는 평생 약 120여 점의 목판화 또는 동판화 작품을 제작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1921년1934년에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한국인과 한국 풍경을 그린 작품을 80여 점 남겼으며, 그 중 약 30점을 판화로 만들었다.

1946년 출판된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은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인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글을 담고 있다.[23] 이 책은 2006년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23] 1928년 출판된 《Eastern Windows》에서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언니에게 쓴 편지를 편집하여 12점의 그림을 소개했다.[24] 《Eastern Windows》는 2012년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키스의 작품 목록도 첨부되었다.[25]

한국의 신부를 그린 그림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참관한 전시회에서도 전시되었으며, 목판화로도 제작되었다.[28][29][30] 엘리자베스 키스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세 차례 디자인하기도 했다.

1917년 11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의붓형부 로버트슨 스코트의 회사, 신동양사에서 『웃으면서 참아줘』라는 풍자화집을 간행하고, 화족회관(현·카이카이칸)에서 1권 5엔으로 배포회를 열었다. 이 배포회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적십자사 주최의 자선 행사였다.

1919년 미쓰코시에서 조선반도를 그린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을 때, 키스는 와타나베 쇼자부로를 만났다.

키스는 1921년 9월 20일과 22일 양일간 서울 장곡천정(현·소공동)의 은행 집회소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개최했고, 1934년 2월경 미쓰코시(현·신세계) 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도쿄에서도 조선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귀국길에 미국에서 순회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1924년 런던으로 귀향하여 영국 왕립 예술원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후, 1926년에는 파리에서도 개최했다.

1928년에는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1936년과 1937년 키스는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아시아 예술 수집가 그레이스 니콜슨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보 아츠 갤러리에서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방문한 전시회도 열었다.[1][5][8]

2006년에 전북도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독 전시회를 통해 한국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는 20세기 초 판화의 대가로 인정받았다.[31]

2. 4. 한국에 대한 애정과 비판

엘리자베스 키스는 1919년 3·1 운동 직후 언니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3개월간 체류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21][22] 한국에서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모델을 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서울, 원산, 함흥, 평양, 금강산 등을 여행하면서 한국인의 생활상과 각 지역의 풍경과 풍속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키스는 1921년1934년에 한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했고, 한국인과 한국 풍경을 그린 작품을 80여 점 남긴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약 30점을 판화로 만들었다. 1946년에 출판된 《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에서는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규탄하고 한국 사람들의 고통을 동정하는 글을 실었다.[23] 이 책은 2006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23]

키스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세 차례 디자인한 바 있는데, 크리스마스 씰의 창시자인 셔우드 홀 박사가 그림의 모델을 구해 주었다고 한다.

2. 5. 말년

엘리자베스 키스는 1956년 4월 런던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였다.[9][2] 키스의 판화는 인쇄된 복제본의 수가 적고 생전에 대량 판매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희귀하고 값비싸다. 그녀의 판화 중 일부는 30부 또는 50부만 출판되었다. 그녀의 생전에 그녀의 작품 중 일부는 대영 박물관, 파리의 기메 미술관, 캐나다 국립 미술관, 호놀룰루 미술 아카데미에 소장되었다.[6]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1937년에 키스의 판화 여러 점을 구입했다.[10] 그녀의 포트폴리오는 100점 이상의 목판화와 약 12점의 컬러 에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의 모든 목판화는 연필로 서명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서명이 매우 흐릿한 경우가 많다.[1] 키스의 주요 작품 소장처는 오리건 대학교의 조던 슈니처 미술관이다.

3. 주요 작품 경향

엘리자베스 키스는 아시아의 삶과 문화를 묘사한 판화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4] 28세에 도쿄로 여행을 떠나 9년 동안 머물면서 아시아에 대한 깊은 매료됨을 얻었다. 신판화 출판업자 와타나베 쇼자부로는 키스의 전시회를 보고 서울 동대문의 모습을 목판화로 변환하도록 설득했다.[1][6]

키스는 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며 중국, 한국, 필리핀을 방문하여 작품의 소재를 수집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안도 히로시게,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작품을 모방하여 전통적인 일본 목판화 기법을 배웠다. 풍경, 전통 의상과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 문화적 의례가 그녀의 이미지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일본뿐만 아니라 런던뉴욕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3. 1. 동아시아 풍경과 풍속

엘리자베스 키스는 아시아의 삶과 문화를 묘사한 판화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4] 28세에 도쿄로 여행을 떠나 9년 동안 머물면서 아시아에 대한 깊은 매료됨을 얻었다. 일본에서 첫해를 보내면서 도쿄의 외국인 거주자들을 캐리커처로 그린 작은 전시회를 열었고, 적십자를 위한 책 『Grin and Bear It』으로 출판했다.[2] 한국 여행에서 가져온 수채화를 도쿄에서 전시했는데, 키스는 이를 "그곳에서 열린 최초의 한국 주제 전시회"라고 주장했다.[5] 신판화 출판업자 와타나베 쇼자부로는 키스의 전시회를 보고 서울 동대문의 모습을 목판화로 변환하도록 설득했다.[1][6]

키스는 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며 중국, 한국, 필리핀을 방문하여 작품의 소재를 수집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 안도 히로시게,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작품을 모방하여 전통적인 일본 목판화 기법을 배웠다. 키스의 작품은 일본뿐만 아니라 런던과 뉴욕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풍경, 전통 의상과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 문화적 의례가 그녀의 이미지의 중심을 이루었다. 또한, xingle tu|싱러투중국어 또는 "쾌락 초상화"라고 불리는 중국 회화 초상화 전통의 맥락에서 초상화 판화를 제작했다.[7]

3. 2. 한국에 대한 애정과 비판 의식

키스는 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며 작품 소재를 수집했고, 특히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1919년 3·1 운동 직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3개월간 머무르면서 한국인의 생활상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5] 서울, 원산, 함흥, 평양, 금강산 등을 여행하며 각지의 풍경과 풍속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5]

키스는 한국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21년 9월 20일과 22일, 서울 소공동의 은행 집회소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34년 2월경에는 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다. 도쿄에서도 한국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5]

키스는 일본에서 우키요에를 배웠지만, 한국 풍속을 그린 작품에서는 그 영향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조선적인 선묘를 보여주었다. "정월의 쇼핑(서울)"에 그려진 모자를 보면, 동시대에 활약한 헬렌 하이드의 화풍과 통하는 점이 보인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키스는 일본의 군사적 폭력을 비판하며 중국 여성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모금했다. 그러나 그녀는 "많은 일본인 친구들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5] 1946년,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 엘스펫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Old Korea: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을 출판했다. 이 책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루이 마운트배튼 경, 그리고 체스터 니미츠 제독에게 헌정되었다.[5]

4. 작품 목록

제목출판/제작 정보소장처비고
Masters of the Colour Print :1933년London Newyork
Eastern Windows1928년London, 송영달 편역,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 영국 화가가 그린 아시아, 1920-1940 (책과함께, 2012)
Old Korea : The Land of Morning Calm1946년Elizabeth Keith, Elspet K. Robertson Scott. 송영달 역,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책과함께, 2006)
Grin and Bear it1917년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찾기2008년배유안 글, 송영달 그림제공 (책과함께 어린이)
Elizabeth Keith: the Printed Works1992년Richard Miles, Asia Pacific Museum
사찰의 번화함(금강산)1920년경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조선의 학자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원산의 학자와 그 제자들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정월의 쇼핑(서울)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아침의 수다(함흥)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조선의 사람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재봉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설경1921년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장기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남색과 흰색1925년지바 시립 미술관와타나베 판화점


5. 영향 및 평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1956년 런던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9][2]

키스의 판화는 인쇄된 복제본의 수가 적고 생전에 대량 판매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희귀하고 값비싸다. 그녀의 판화 중 일부는 30부 또는 50부만 출판되었다. 그녀의 생전에 그녀의 작품 중 일부는 대영 박물관, 파리의 기메 미술관, 캐나다 국립 미술관, 호놀룰루 미술 아카데미에 소장되었다.[6] 엘리자베스 여왕은 1937년에 키스의 판화 여러 점을 구입했다.[10] 그녀의 포트폴리오는 100점 이상의 목판화와 약 12점의 컬러 에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의 모든 목판화는 연필로 서명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서명이 매우 흐릿한 경우가 많다.[1] 키스의 주요 작품 소장처는 오리건 대학교의 조던 슈니처 미술관이다.

6. 관련 인물


  •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Elspet Keith Robertson Scott, 1875년 ~ 1956년): 엘리자베스 키스의 언니로, 극작가였다.[12] 1906년 저널리스트 로버트슨 스콧(John William Robertson Scott, 1866년 ~ 1962년)과 결혼하여 1915년 남편과 함께 일본에 와서 4년 반 동안 체류했으며, 여동생 엘리자베스와 함께 아시아 각지를 여행하고, 공저로 『Old Korea』를 출판했다.[13]
  • 로버트슨 스콧 (John William Robertson Scott, 1866년 ~ 1962년): 엘리자베스 키스의 형부(언니의 남편)이다. 영국 컴벌랜드 출신이다.[14] 양친은 스코틀랜드 저지대 출신으로, 아버지는 행상인이자 금주 운동 권유원이었다.[14][15] 여러 잡지 기자를 거쳐 농촌 연구를 명목으로 1915년 일본에 왔으며, 1916년 3월 주일본 영국 대사윌리엄 커닝햄 그린의 요청으로 반독 친영 선전을 위한 선전 요원이 되어, 선전 팸플릿 『일본, 영국 및 세계』와 독일의 전쟁 범죄를 선동적인 삽화와 함께 듬뿍 적어 넣은 영일 양국어 『The Ignoble Warrior(邦題・是れでも武士か: 欧州戦争の原因及び行動に関する研究資料の集録)』(1916년)을 마루젠에서 간행했으며, 영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다음 해인 1917년 일영 병기 월간지 『The New East(신동양)』를 창간했다.[16][17] 일본어 번역본 "이래도 무사인가"를 담당한 친구 야나기타 구니오와 함께 일본 각지의 농촌을 조사하고, 1919년 귀국한 후 야나기타와의 여행을 바탕으로 『The Foundation of Japan』(1922년 간행)을 집필했다.[18][17] 같은 해, 영국 부인회(:en:Women's Institutes) 활동에도 관여했지만, 1923년 코츠월즈로 이주하여 시골 생활 잡지 『컨트리맨(:en:The Countryman)』을 창간, 1947년까지 편집에 참여했다. 과거 활동으로 컴패니언 오브 아너 훈장을 수훈했다.
  • 와타나베 쇼자부로: 1919년 미쓰코시에서 조선반도를 그린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을 때, 키스는 판원인 와타나베 쇼자부로를 만나 목판화 제작을 권유받아, 그해부터 와타나베 판화점에서 목판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 1925년에 그려진 신판화 "남색과 흰색"에서 도자기 가게 쇼케이스에는 가쓰시카 호쿠사이니시키에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장식되어 있어, 키스가 호쿠사이의 아이즈리 "후가쿠 36경"을 강하게 의식했으며, 호쿠사이를 존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 헬렌 하이드: "정월의 쇼핑(서울)"에 그려진 모자를 보면, 동시대에 활약한 헬렌 하이드의 화풍과 통하는 점이 보인다.

참조

[1] 웹사이트 Biography of Elizabeth Keith (artist) - artelino https://www.artelino[...] 2019-03-16
[2] 뉴스 Miss Elizabeth Keith https://link.gale.co[...] Times 1956-04-13
[3] 논문 Selling East Asia in Colour: Elizabeth Keith and Korea 2020
[4] 웹사이트 Viewing Japanese Prints: Elizabeth Keith Woodblock Prints http://viewingjapane[...] 2016-04-18
[5] 서적 The Trans-Pacific Imagination 2011-10-24
[6] 웹사이트 Visions of the Orient Artist Spotlight: Elizabeth Keith https://blog.nmwa.or[...] 2011-11-22
[7] 논문 Feminine Orientalism or Modern Enchantment? Peiping and the Graphic Artists Elizabeth Keith and Bertha Lum, 1920s–1930s https://brill.com/vi[...] 2014-09-10
[8] 뉴스 Court Circular Times 1937-11-25
[9] 웹사이트 Elizabeth Keith Biography {{!}} Annex Galleries Fine Prints https://www.annexgal[...] 2019-03-16
[10] 웹사이트 Elizabeth Keith woodcuts https://www.rct.uk/e[...] 2020-03-11
[11] 서적 Britain and Japan: Biographical Portraits Global Oriental 2007-05-31
[12] 서적 Yanagita Kunio and the Folklore Movement (RLE Folklore): The Search for Japan's National Character and Distinctiveness Routledge 2015
[13] 문서 Old Korea https://archive.org/[...]
[14] 간행물 Scott, John William Robertson https://www.oxforddn[...] Oxford University Press
[15] 서적 Yanagita Kunio and the Folklore Movement (RLE Folklore): The Search for Japan's National Character and Distinctiveness Routledge 2015
[16] 서적 The Ignoble Warrior https://archive.org/[...] Maruzen 1916
[17] 논문 日英における移動と衝突 : 柳、柳田、スコット、リーチの交錯の例から https://hdl.handle.n[...] 2013-03
[18] 문서 The Foundation of Japan https://archive.org/[...]
[19] 뉴스 Miss Elizabeth Keith https://link.gale.co[...] Times 1956-04-13
[20] 논문 Selling East Asia in Colour: Elizabeth Keith and Kore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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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서적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무이 문화찾기 책과함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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